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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두딸 입양' 신애라의 심금 울리는 말.."정인아 미안해"

두 딸을 공개 입양해 키우고 있는 배우 신애라의 진심 어린 말 한 마디가 큰 울림을 준다.신애라는 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친생부모, 입양부모, 위탁부모, 미혼부모. 많은 사람들이 쉽게 부모가 된다"며 "하지만 그중에 부모의 자격이 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라고 글을 게재했다.이어 신애라는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크고 작은 정인이가 울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무서울까. 우리의 책임이다"라며 "나의 책임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뭘 해야할까"라고 적었다. 함께 공개된 사진에는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라고 적힌 이미지를 통해 챌린지에 동참했다.앞서 신애라, 차인표 부부는 아들 정군을 얻은 뒤 2005년, 2008년 두 딸을 공개 입양했다. 최주원 기자 2021.01.05 15:04
경제

17세 아들 떠나보낸 부모 "결국 코로나가 우리 애를 죽인 것"

17세 막내아들을 먼저 떠나 보낸 어머니(52)는 결국 오열했다. 숨진 아들이 1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최종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결과 발표를 듣고서다. 어머니 이씨는 "우리 막내, 불쌍한 내 아들. 코로나 인줄 알고 혼자 격리돼 치료를 받으면서 얼마나 무서웠겠냐. 격리돼 제대로 얼굴도 못 봤는데…"하며 울먹였다. 앞서 18일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숨진 정모(17)군의 아버지(54)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코로나 19가 우리 아들을 죽인 건 맞네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아들 정군이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병원에서 외면받고, 결국 사망한 뒤 음성 판정을 받은 것과 관련해 정부의 감염병 의료체계를 지적한 것이다. 정군의 부모도 전날 음성 판정을 받았다. 경북 경산 지역 고교 3학년생인 정군은 지난 10일 처음 발열 증상을 보이고 8일 뒤인 18일 오전 11시 16분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숨졌다. 정군의 부모에 따르면 정군은 신천지와의 관련도 없고, 최근 3주간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이날 마스크 5부제에 따라 마스크 구입을 위해 약국에서 한시간가량 추위에 떨며 대기한 뒤 발열 증상을 보였다는 게 부모 설명이다. 정군의 부모는 "아들은 코로나19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며 "아무리 그래도 병원이 '오늘 밤을 못 넘길 것 같다'고 판단한 환자를 집에 돌려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 이건 우리 아들의 치료권을 박탈한 행위다. 지금의 감염병 의료체계는 잘못됐다"고 했다. 발열 증상 후 12일 찾은 경산중앙병원에서 정군은 40도 정도의 심한 고열 증상을 보였다. 정군 부모에 따르면 41.5도를 기록했고, 병원은 39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병원에서는 감기로 진단하고 해열제·항생제를 처방해 돌려보냈다. 다만 병원에서는 다음날 일찍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다음날 정군은 검사를 받은 후에도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지 못했다. 열이 40.5도까지 오른 데다 X선 촬영 결과 양쪽 폐에 폐렴 소견이 있었지만,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다. 이에 대해 경산중앙병원 측은 "검사 결과에서 양성일 수 있어 입원 치료가 불가능했다"며 "우리로선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결국 정군은 13일 오후 6시쯤 대구 영남대병원으로 향했다. 영남대병원에서는 음성·양성 판정 결과가 나오지 않은 정군을 음압병실에서 치료했다. 영남대병원에서는 정군이 사망하기까지 코로나 19 검사 8차례를 시행했고, 7번은 음성이 나왔다고 했다. 이중 한번의 결과는 애매해 '미결정' 상태로,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는 추가 검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19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는 "(정군은) 최종 음성 판정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영남대병원에서는 정군이 코로나19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치료했다. 음성 판정을 수차례 받다가 양성이 나온 사례가 국내에서도 많이 발생해서다. 실제 영남대병원은 부모에게 떼준 사망진단서에도 '코로나 폐렴으로 인한 급성호흡부전'을 사인으로 썼다. 다만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정군에 대한 검사에 돌입한 뒤 병원 측에서는 부모에게 "어쨌든 계속 음성 판정이 나왔으니 일반 폐렴으로 보고 정확한 검사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했다. 정군의 부모는 아들이 감염병 의료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라고 했다. 정군 아버지는 "우린 아들이 처음부터 코로나가 아니라고 했는데, 경산중앙병원에서는 검사가 음성으로 나와야 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인듯 했다"며 "그렇게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병원에선 코로나로 숨진 걸로 사망진단서에 나왔는데 정부는 음성이라고 발표했다. 사실 어느 게 맞는 지도 잘 모르겠다"며"어쨌든 코로나19가 아닌 사람은 우리 아들처럼 치료도 못 받고 죽는 거냐"고 말했다. 경산=백경서·김정석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2020.03.19 20:12
연예

[불편한 삼국지] 유선, 바보 아니었다…권력의지가 없었을 뿐

유선은 어리석은 바보는 아니었다. '삼국지연의'는 그를 어리석고 유약한 인물로 그리고 있으나 실제로 그의 처신을 보면 현실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지녔으며 어떤 면에서는 영민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당양 장판의 싸움에서 유비가 간난아기였던 유선을 내동댕이쳐서 머리가 아둔해졌다든가 하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다만 난세의 군주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는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유선은 밑바닥에서부터 자수성가하며 야심을 키워왔던 그의 부친 유비와는 성장배경이나 천품이 너무도 달랐다. 세상에 나온 이래 고생이라고는 겪어 본 적이 없으니 근성이나 야망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익주의 대학자 맹광과 유선의 비서 극정이 그의 자질에 대해 토론한 내용을 보면 유선은 그저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착한 아들일 뿐이었지, 천하를 제패하려는 야망은 물론 난세의 군주로서의 책략과 판단능력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유선에게는 권력의지가 없었다. 유선은 제위에 오르자 제갈량에게 모든 국사를 위임하면서 말했다. "정무는 제갈씨가 행하라 하시오. 과인은 제사나 지내겠소."유선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을 것이다. 제갈량은 승상에 익주목을 겸임해 군국의 모든 권한을 장악했다. 유비가 생전에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제갈량을 견제할 만한 세력은 모두 죽거나 실각한 상태였다. 제갈량이 권력을 독점한 상황에서 유선이 그와 권력을 다투어봐야 좋을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제갈량이 죽은 후에도 정사에 무관심한 유선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상서령으로 국사를 맡은 장완은 그 지위나 권력이 제갈량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유선은 충분히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음에도 이를 자발적으로 포기해 버렸다. 조금 지나 장완이 믿을 만 하다고 생각되자 다시 모든 군국의 대사를 일임해 버린 것이다.그리고 나서 그가 최초로 한 일은 황제가 된 후 처음으로 궁전 문밖을 벗어나 관광을 하러 다닌 것이다. 유선은 촉군 전현으로 유람을 가 전망대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고 열흘 정도 신나게 놀았다. 한마디로 유선은 머리 복잡한 정무는 믿을 만한 신하에게 맡기고 자신은 여유 있게 인생을 즐길 생각이었다. 이후 유선은 계속해서 정사와 군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유선의 문제점은 지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일국의 군주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권력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그는 어렵사리 제 손 안에 되돌아온 권력조차도 아랫사람에게 냉큼 맡겨버릴 정도로 국가의 통치나 권력 행사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곱게 큰 부자집 도련님처럼 풍부하고 즐거운 삶만 보장되면 다른 일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초주가 항복을 권유했을 때 그는 내심 다행이다 싶었을 지도 모른다. 행사할 생각도 없는 권력을 쥐고 불안에 떨고 살기보다는 안락한 생활만 보장된다면 다른 사람의 밑에 들어가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싱겁게 항복했다. 그 대가로 안락하고 안전한 삶을 얻었다. 될 수 있으면 남들에게 어리숙하게 보이려 애쓰며 말이다. 권력의 화신이었던 그의 부친 유비가 보면 땅속에서도 벌떡 일어날 일이었겠지만 유선은 그 덕에 안심입명할수 있었다.[영웅의 이면] 유선과 손호 촉한이 망한 후 유선(A.D 207~271년)은 일가권속들과 함께 낙양으로 붙잡혀 갔다. 위나라에서는 그를 안악현공에 봉하고 식읍 만호를 주었으며, 비단 만 필과 노비 백 명도 하사해 주어 예전처럼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유선이 낙양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마소가 그를 위해 연회를 베풀어주었다. 사마소가 옛 촉나라의 가기들을 불러 노래하고 춤추게 하자, 유선을 수행한 옛 촉나라 사람들은 다 슬픈 표정을 지었으나 유선만은 평소와 다름없이 즐거워하며 태연자약하게 웃었다. 사마소가 유선에게 물었다. "자못 촉나라가 생각나지 않나요?" 유선이 대답했다. "이처럼 즐거움 속에 살고 있는데 어찌 촉나라가 생각나겠습니까." 어이가 없어진 사마소가 측근 가충을 돌아보며 말했다 한다. "사람이 생각이 없음이 어찌 저 정도에 이르렀을까! 비록 제갈량이 살아있었다 할지라도 오래 온전하게 보필하지 못했을 터인데 황차 강유였으니 오죽했겠소?" 유선을 끝까지 수행했던 촉나라 신하 중에 극정이란 사람이 있었다. 극정이 이 말을 듣고 유선에게 조언했다. "만약에 사마소가 고향이 그립지 않으냐고 물으면 의당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답해야 합니다. ‘조상의 분묘가 멀리 촉나라 땅에 있으니 서쪽을 생각하면 마음이 슬픕니다.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지그시 감으십시오. 어쩌면 사마소가 촉으로 돌려 보내줄 지도 모릅니다." 유선은 철저한 감시 하에 있었으므로 이 두사람의 대화는 모두 사전에 사마소에게 보고됐다. 후일 사마소가 다시 촉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유선은 극정이 시킨 대로 대답했다. 사마소가 빈정거렸다. "어찌 그리도 극정이 말해주었던 것대로 대답을 하시오!" 유선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진실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비웃었다 한다. 유선의 이런 어리석은 행동은 동오의 마지막 군주 손호(A.D 242~284년)의 당당한 태도와는 사뭇 비교가 된다. 역시 망국 군주인 손호가 낙양에 포로가 되어 끌려왔을 때 서진의 초대 황제 사마염이 그를 잔치에 초대했다. 사마염이 손호를 보고 자신의 옆에 놓인 자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짐은 이 자리를 마련해 놓고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였다."손호도 당당하게 대거리를 했다."저도 건업에 그런 자리를 하나 마련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사마염은 웃었다. 사람들은 손호가 비록 망국의 군주였지만 기개가 있다고 말하며 유선과 비교했다. 그러나 손호는 진나라에 항복한 바로 이듬해에 죽었는데 아직 한창인 나이였다. 그의 사인에 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아마도 정상적인 죽음은 아니었으리라 추측된다. 망국의 군주가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냥 살려두는 것은 늘 불편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유선의 우둔한 듯한 행보가 오히려 현명한 처신이었다. 유선은 이때까지 살아남았고 나름대로 가문을 보전하며 그 후대까지도 잘 살았다. 어리숙해 보여 의심을 피하는 것, 그것이 유선의 생존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짓말 벗겨보기] 유선이 제갈량의 제사를 지냈다고? '삼국지연의'는 제갈량이 죽자 유선은 친히 제갈량의 유해를 *정군산에 안장하고 면양 땅에 사당을 세워 계절에 따라 제사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 사실과 많이 다르다. 제갈량이 죽자 여러 곳에서 그의 사당을 건립하고자 했으나 유선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하는 수 없이 제각기 들판이나 민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유선이 면양에 제갈량 사당 건립을 허락한 것은 제갈량이 죽은 지 20년 가깝게 지난 후였다. 그것도 여론의 압력에 못이겨 마지못해 한 일이었다.풀이 *정군산=중국 산시성에 자리한 산으로 1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2014.01.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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